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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보내신 저 곳에 주님의 십자가를 내리리이다. 호흡이 불가능할 정도로 벅차 오르는 감격은 나같이 부족한 못난이가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에 천하보다 더 귀하다고 말씀하신 그 귀한 영혼들을 부족한 저를 통해 구원 받아야 할 수많은 영혼들이 준비되어 있음을 보여 주시며 주님의 그 큰 사랑을 부족한 사람이 받고 있음에 너무도 감격했습니다, 

거듭된 여전도 회장님의 권면에도 단연 거절을 했습니다. 저는 개척을 할수도 갈수도 없습니다. 무역으로 돈을 벌어 하나님께서 분부한 "고아와 과부를 불쌍히 여겨라, 하셨으니 과부들은 어른들이라 알아서 살 수 있고 먼저 배고픈 고아들을 먹이고 공부도 시키고 크리스챤 학교를 초등하교 부터 대학교까지 기숙사를 겸하여 세워 온전한 믿음으로 무장된 바울 사도와 같은 사명자 일꾼을 양성하여 국내는 물론 세계 복음화로 영혼구원을 위해 기도를 퍼붓고 있을 때였습니다.

남편까지 소천한 못난이가 이 일을 어찌하라고 하십니까? 부족한 자가 주님의 이 거룩한 사역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마음이 떨려옵니다.

깜짝 놀라 가슴이 덜컹, 놀라서 달려와 보니 교회로 사용한 천막이 강대상을 덮고 있었습니다. 태풍으로 천막 교회가 송두리채 날아가 멀리 떨어진 논에 있어서 마을분이 가져다 강대상을 덮어 놓은 것입니다. 천막교회라 쉽게 수습이 되어 예배를 드렸습니다.

참다 못해 정규오 목사님을 찾아가서 호소한 풋내기 전도사를 학장님은 어여삐 여기시고 정규오 목사님께서 전도사님 그 마을을 어떻게 들어 가셨습니까? 양반촌 마을에서 여자 전도사님을 받아 주셨습니까? 전도사님의 불타는 사명감을 충분히 공감합니다. 저도 협조하겠습니다. 하시더니 그 마을 출생으로 부산에서 광진병원을 경영하신 원장님을 통해 건축비와 피아노가 들어 왔습니다 또 면 전체를 대상으로 의료봉사를 여름성경학교와 함께 시행해 주셨습니다.

예쁜 모습에 서지숙이와 서선숙이 자매 지금은 목사님 사모님이 되신 윤미숙 사모님과 윤오덕, 서경미, 정선희, 정미경 자매들의 열심이 모아졌습니다. 정충민, 정충헌, 정경희, 정미선, 김숙영, 김순명, 정행기... 작은방에서 천막교회를 거쳐서 교회건축을 함께한 주일학생 꼬마들의 주먹손들이 집에 양은 세숫대야를 가져와 하천에서 사설포커 자갈을 모아 철애교회 기초공사에 한몫을 하여 가져온 양은 세숫대야는 쪼그라지고 구멍이나 집에 가져갈 수 없어 교회건축의 헌물이 되었습니다. 예쁜 꼬막손들 주여 축복하소서...

복음에 빚진자의 사명 안고 주님과 한몸되어 목회길을 동행하며 자녀 양육과 목사님 뒷바라지에 교회와 성도님들 지역민들까지 돌보며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넉넉히 감당하시며 남편 목사님과 열심히 목회 현장에서 사역하시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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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님은 바쁘게 돌아가는 교회 프로그램에 신속히 대처하느라 정작 챙겨야 하는 본인의 가정사와 자녀들은 손이 미치지 못하여 사모님이 감당해야 할 짐은 산더미 그 자체였습니다.

통정 외마디 여보 미안해요 미안해요 마지막 가는길 힘들 때 곁에서 지켜 주지 못해 미안 미안합니다, 얼마나 목메도록 애타게 찾고 부르셨습니까?

이 분이 마을 대표로 교회를 마을에서 쫒아 내야 본인이 하는일도 제동이 안걸리고 하니 교회를 어찌하든 몰아 낼려고 무던히도 설치더니 그 일 이후로는 교회 핍박에 맹렬하게 앞장 섯던 그 분이 잠잠해 조금은 조용해졌습니다.

부부의 연을 맺어 자녀들 낳고 젊었을 땐 노름에 바람둥이로 가족은 돌보지도 않고 남의 사람처럼 떠돌아 다니다 나이 들어 늙고 병들어 갈곳 없으니 조강지처 찾아와 내치지도 못해 그 뒷바라지까지 감수한 우리네 어머님은 그 남편이 병들어 돌아가시니 그런 허수아비 같은 남편이라도 곁에 살아 있을 때가 좋았다고 신세타령에 우시는 것을 봐왔습니다.

늦은 나이에도 나약하고 초라한 나의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피해 다니다 어쩌다 아는분을 마주치면 몇마디 오가는 대화중에 내 볼에 흘러 내리는 눈물에 대뜸 하시는 말씀 사모님 왜 울어요 목사님 천국에 가셨으니 천국에 가셔서 만나면 되지요 하시는 분은 거의 목사님이셨습니다.

평생을 복음으로 영혼 살리는 구령을 사명으로 살았기에 세상 사람들과는 분리된 기독교 문화 안에서만 활동한 탓으로 막상 남편 목사님이 소천하시니 그것으로 사모님의 이름은 소속에서 흔적없이 남편 이름과 함께 사라져 그렇게 많이 오던 우편물도 끊어 지고 교단에 행사에도 불러 주는 곳이 없어 같은 지역에서 늘상 대하던 시찰회 목사님 사모님들이 보고 싶고 그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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